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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탐방

조선시대 국립학교<인천 계양구 부평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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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부평향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곳은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날씨가 마침 좋아서 사진 연습이나 해볼 겸으로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차근차근 한 바퀴를 다 둘러보니 의외로 볼 거리가 많았습니다.

 

특히, 저는 2년 전에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한국관광자원 중 하나로 향교에 대해서 공부했던 터라 그 때 배웠던 내용을 되살리며 재미있게 구경을 했습니다.

 

자, 그럼, 과거 우리 조상들의 학교를 한 번 구경해 볼실까요?


 


향교(鄕校)란?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방에 설립된 관학 교육 기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교육기관이 크게 관학서학으로 나뉘었는데, 현재로 비교하면 관학은 국립학교, 사학은 사립학교라고 보시면 됩니다.

 

당시, 관학은 성균관과 4부학당, 지방의 향교가 있었고, 사학으로는 서당과 서원이 있습니다.향교는 성균관의 하급 중등 국가 교육 기관으로써,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고, 유교 이념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향교의 기능

 

향교는 크게 유교적 이념을 전달하는 교육기능과, 공자를 중심으로 유교에 공헌한 이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는 배향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따라서, 지역 유교의 상징적인 공간이었으며, 유학의 이념을 널리 전파하는 중심적인 장소였습니다.

 

 

 

향교의 교육 과정

 

향교는 시를 짓는 사장학(詞章學)과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는 경학(經學)을 배웠으며, 교과서로는 소학(小學), 가례(嘉禮), 사서오경(四書五經)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공부하는 방식은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교과서를 공부한 후 읊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학생은 누구?

 

당시 향교의 학생은 '교생'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16세에서 40세 미만의 평민 이상의 자녀들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추천이나 시험을 통해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에 따르면, 입학 정원을 당시 지역 규모별로 부, 대도호부, 목에는 각 90명, 도호부에는 70명,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습니다.

 

향교에 입학하면 군역의 면제를 받는 혜택이 있어 이를 목적으로 입학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부평향교
주소 : 인천광역시 계양구 향교로 19 
연락처 : 032-541-2941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 

 

이제 본격적으로 부평향교를 구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향교는 각 고을의 중심지에 하나씩 세워졌는데요, 향교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것은, 지금의 계산동이 고려에서 조선시대의 중요한 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오시는 길

 

혹시라도, 타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을 위해 오시는 길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찾아오시는 방법은 매우 쉽습니다.

 

 

지하철 경인교대역에서 내리신 다음 6번 출구로 나옵니다.

 

 

6번 출구에서 올라온 방향 그대로 직진한 후 첫번째 코너에서 좌회전을 합니다.

다시, 직진을 한 후 좌회전을 하면, 바닥에 '향교로'라는 글씨가 보일텐데요, 여기서 약 1분만 올라가면 바로 <부평향교>를 찾을 수 있습니다.

 

 

부평향교가 처음 설립되었던 것은 고려시대 인종 5년인 1127년입니다. 설립된 지 거의 1,000년이 다 되어가니 유서가 매우 깊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향교는 교육 뿐 아니라, 유교 선현의 제사를 모시던 매우 신성한 곳으로 악귀를 물리치고 액운을 막을 수 있도록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은 신성시되는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로 세워 둔 문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붉은색으로 색칠이 되었으며, 사나운 기운을 막도록 삼지창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홍살문 앞에는 하마비가 있는데요, 하마비는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말이나 가마를 타고 가던 사람 누구든지 내려서 걸어가야한다는 뜻이 쓰여진 비석입니다. 

 

 

홍살문을 지나게 되면, 이제 부평향교라는 현판이 있는 외삼문에 도착합니다.

 

 

문을 들어가면 바로 코로나로 인해 출입대장을 작성하게 됩니다

 

 

현재 부평향교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체험을 접수하고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여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바로 명륜당이 보입니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공부를 하고, 각종 행사를 준비하던 곳인데요, 현재로 말하면 교육을 받는 강의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륜당 오른쪽에는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는데요, 화장실 모습도 전통적인 모습으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부평향교는 <부평향교 재단>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요, 제가 갔던 날도 관리를 하시는 분께서 향교 입구에 있는 '교직사' 건물에서 나와 계셨습니다.

 

관리하시는 분이 계셔서인지 화장실도 그렇고, 향교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관리가 된 모습이었습니다.

 

 

자, 이제 명륜당을 지나 다음 건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명륜당을 지나면, 당시 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동재서재 건물이 나옵니다.

 

 

현재의 기숙사와 같은데요, 양반과 평민 신분에 따라 기거하는 곳이 달랐다고 합니다.

 

 

당시 기숙사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장농이 한 개 놓여있습니다.

갑자기, 예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생각이 납니다.

 

 

동재와 서재 건물을 지나면, 이번에는 내삼문이 나오는데요, <정숙>이라는 안내판이 있네요

 

정숙이라는 글씨를 오랜만에 만나 정말 정겹습니다.

 

마치, 진짜 이 곳에 당시 유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어서 조용히 해야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 건물은 바로 '대성전'입니다.

 

바로 이 곳 <대성전>에서 바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우리나라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데요,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이곳은 성현을 모시는 신성한 공간으로 공부하는 건물보다 단을 높여서 건축하였고, 공자,안자, 맹자 등 중국 5성,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 등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대성전> 안쪽을 구경하고 싶었는데요, 안타깝게도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문 창호지가 뜯어진 구멍으로 내부를 살짝 구경할 수 있었는데요, 내부 벽면에는 공자의 그림인 듯한 초상화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단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밤에 와서 구경하면 으스스할 것 같습니다.

 

 

대성전 바로 아래 동무서무 사당 건물에는 최치원, 정몽주, 이황, 이이 등의 우리나라의 성현들을 모셨다고 합니다.

 

 

부평향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지대를 설치한 나무들이 여럿 있었는데요, 부평향교가 연륜을 느껴졌습니다. 

 

 

하늘 위로 오르는 용의 모습 향나무 아래에 <망등위>라고 써 있는 비석이 있습니다.

연륜을 말해주듯 나무 위에 이끼도 많이 있습니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니 오늘 덥기는 하지만,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잠시나마 마루에 앉아 날씨도 감상하고 조선시대 공부한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한 바퀴를 다 돌아보고 나와서 다시 한번 <부평향교 안내문>을 보니 이제 향교의 구조가 더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밑에 있는 QR 코드를 핸드폰에 인식시켜 보니 이렇게 <문화유산 해설>사이트에 접속이 되어, 음성 안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향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명은 <향교길 동남아파트>이네요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문화유산인 것 같습니다.

 

 

 

2021.08.22 - [지역 탐방] - 인천 계산동 부평도호부 관아 / 조선시대 관청

 

인천 계산동 부평도호부 관아 / 조선시대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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